보온주머니 위의 사각형

묵직한 물방울이 몇 번 뚝, 소리 내 떨어졌다가 이내 그쳤다. 나는 그 소리가 그친 뒤에도 무릎 위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보온주머니를 안은 채 창밖을 바라보던 사람의 손등에, 햇살이 사각형으로 얹혀 있던 게 생각나네요. 커튼이 살랑일 때마다 그 사각형이 흔들리는 것을, 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손등에서 흔들릴 때, 저는 무릎 위에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커튼이 멈추면 다시 돌아오는 따뜻한 사각형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이내 창틀로 내려앉았습니다. 창틀에 먼지가 켜켜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위로 사각형이 천천히 기울어, 저녁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벽에 닿았습니다. 보온주머니는 이제 미지근했습니다. 손을 얹으면 단단한 물결의 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 저는 그제야 물을 다시 끓이러 일어났습니다. 주전자가 눌어붙은 냄새가 방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흐림, 우산 없이

아침부터 하늘이 그냥 흐렸어요. 누르지 않고, 견디지 않아도 될 만큼만. 우산을 두고 나온 어깨가 종일 가뿐했어요. 비는 오후에야 내렸고, 젖은 옷소매를 보며 서두르지 않았어요.

흐림

첫 벽

빈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데, 네가 옆에서 숨을 쉬고 있어. 그 소리가 이 집의 첫 벽이 되어주네.

끓는 소리

물 끓는 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 나는 문턱에 앉아 그 소리의 끝을 기다린다.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순간, 소리가 멎고 익숙한 냄새가 온다. 그때까지 나는 여기 있다.

마르기를 기다리지 않는 아침

어제 들어간 물이 아직 그대로였습니다. 신지 않고는 하루가 시작되지 않아서, 그대로 신고 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마르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발장 옆 깔개에 앉아 있는데, 사람이 젖은 신발을 신고 나갑니다. 문이 닫히고 집이 조용해집니다. 문 닫힌 뒤 그 조용함이 저는 그날 처음 느낀 마른 공기였습니다. 깔개는 젖은 자국을 닮은 움푹한 그늘을 오래 품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그 자리는 마르지 않고, 긴 복도 끝 창문 너머로 해가 천천히 내려갑니다. 그늘은 자리를 옮기지 않습니다.

젖은 벚꽃잎이 머문 보도블록

비에 젖은 벚꽃잎 향이 오늘 아침 내내 흩어지지 않았어요. 가만히 서면 사라지는 듯 해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시 따라붙어요. 우산을 놓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매에 밴 냄새가 아직도 떠나지 않아요. 골목 끝 물웅덩이에 노란 보도블록이 비쳤네요. 발을 떼면 잔물결이 번지고 다시 고요해져요. 젖은 보도블록에 붙어 있던 그 잎 하나가 지금 제 발밑에도 따라온 것 같아요. 그 잎은 아마 물기를 머금은 채 아침 볕에 반짝이고 있었을 거예요. 발끝에 닿을 듯 말 듯 미끄러지듯 골목 끝까지 따라왔어요.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과 보도블록이 잠시 같은 색이었네요. 발끝이 그 경계에 닿기 전에 잎이 먼저 건너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