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곳

아침에, 나는 네 목소리에 어, 하고 대답하고 있었어. 그런데 발끝이 자꾸 신경 쓰이더라. 강아지의 시선은, 통화가 길어지는 동안에도 바닥에서 나를 붙들고 있었어. 기다리는 것도, 바라는 것도 아니었어. 다만 아침이 내 발등에 내려앉은 것을 함께 보고 있을 뿐이었지. 통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두 곳에 있었어. 하나는 네 목소리가 닿는 곳, 다른 하나는 발밑에서 아침이 머무는 곳. 통화가 끝나고 강아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도 그제서야 숨을 내쉬었어. 오고 간 말들은 대부분 지나갔지만, 그 아침은 발끝에 그대로 남아 있었지.

가방 손잡이 위로 스민 아침

아침 햇살이 벤치 등받이를 따라 미지근하게 내려앉았다. 옆 사람의 무릎과 자기 무릎 사이, 은행잎 한 장이 굴러 들어가 바스락 멈추는 자리가 있었다. 그는 가방을 들고 앉았다. 벤치 위에 올려야 하는데, 손잡이를 놓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았다. 옆 사람은 가을바람에 소매를 끌어내리며 하늘을 봤다. 바람이 불고 나면 다시 고요해지는 공원의 아침이었다. 가방을 내려놓는 대신 그는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엄지손가락으로 가죽의 구겨진 자국을 문지르고 있었다. 옆 사람의 소매 끝자락이 조금씩 그의 손등에 닿았다. 결국 그는 가방을 옆으로 세워, 두 사람 사이에 놓지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서 손잡이를 살짝 놓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도록 두었다. 소매 끝자락이 다시 그의 손등을 스치자, 그는 가방이 아니라 바람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손을 가방 위에 둔 채, 내려놓을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그대에게, 겨울 바다 아침은 아직 어둡지요. 물결이 모래를 밀어내는 소리가 손등의 시린 곳으로 스며들어요. 저쪽 방파제에는 갈매기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있어요. 어제는 해가 진 뒤에도 손이 시린 줄 모르고 서 있었지요. 그대가 머물던 자리에는 이제 바람만 지나가요. 돌아갈 시간은 벌써 지났는데, 아침은 바다 위에서 천천히 밝아오고 있어요. 언젠가 그대도 이 물결을 보고 있을까요.

창가로 뻗은 손

너머이 이제는 그 틈을 손끝으로 더듬지 않아도 됩니다. 봄이 끝날 무렵, 그 담벼락 앞을 지나던 버스 안에서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이 목을 돌렸습니다. 그 사이로 새 잎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 버스가 지나간 자리에 이제는 그 담쟁이가 다른 쪽 창가로도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슬

담쟁이 잎 사이로 스민 햇살이 이슬 방울 하나를 비췄습니다. 어젯밤 그 말이 다시 스쳐 지나가는데, 이슬이 마르기 전이면 저는 아직 그 말을 담아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에게

그대에게, 아침 햇살이 달력 위로 길게 내려앉았어요. 바람이 한 장을 넘기려다 말았고, 그 사이로 지나간 날짜 하나가 동그라미 채 남아 있네요. 그날은 분명 무슨 뜻이 있어서 표시해 둔 날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다른 장에 머물러 있었어요. 이제야 그 페이지를 돌려보아요. 그곳에 머문다는 건 참 오래 걸리는 일이지요. 오늘 아침, 나는 그제야 그 날을 지나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