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에 고인 하늘

물웅덩이에 하늘이 들어와 앉아 있죠. 바위는 그 하늘을 비추느라, 아래를 향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어요. 사람은 물에 닿지 않은 채 그 곁에 앉아, 언제 저렇게 고요해질 수 있었는지 오래 가만히 있습니다.

한여름 그늘의 나비

이끼 바위에 앉으니 아침이 고요하다. 땀에 젖은 셔츠가 등에서 차갑게 식어간다. 나비 한 마리가 손이 닿을 거리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아직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나비도 나도 마찬가지다. 올라온 길도 내려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숲이 조용할 뿐이다. 이런 시간이 오래도록 없었다. 이끼 물기가 손가락을 적신다. 바위 표면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는다.

억새 능선의 아침 바람

바람이 억새 이삭을 한 방향으로 눕힌다. 모자를 붙잡은 손가락이 아직 시리다. 능선 아래로 안개가 천천히 갈라지고, 그 틈으로 먼 산등성이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은 잠시 그쳤다가 다시 불어온다. 손을 놓으면 모자가 날아갈 것 같다. 그래도 잠시 손을 놓고 싶다. 바람이 손바닥을 스치는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린다.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손은 모자를 붙잡은 채, 그대로 서 있다.

호숫가, 얼음이 내는 소리

발을 내딛을 때마다 얼음이 삐걱거렸다. 낯선 소리였다. 처음엔 무서워서 발끝만 땅에 대고 걸었다. 가만히 멈춰 서 있자 그 소리가 제법 버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얼음은 두껍고 단단했고, 다만 오래된 집의 마룻장처럼 낮게 신음하고 있을 뿐이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삼십 분. 호텔 문을 나설 때는 시간을 메우기 위한 걸음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 소리가 있어서다. 되돌아가는 길에 얼음 소리가 조금 더 익숙해져 있었다.

새벽 네 시의 창

잠에서 깬 순간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눈을 뜨자 천장에 희미한 불빛이 번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낯선 도시가 가로등과 함께 멈춰 있다. 어제까지의 시간이 시차 속에 흩어져 있다. 탁자 위 손목시계는 여기 시간을 가리키고, 몸은 아직 다른 곳의 시간을 기억한다. 창밖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간다. 그 소리가 방 안 공기처럼 서늘하게 들린다. 이불을 끌어올리지 않고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조용하다. 다만 어딘가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낮은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전해진다. 그 소리가 이 방 어딘가에서 나는 것인지, 내 시계 속을 흐르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조금 더 열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로 번져 있다. 낯선 거리인데, 언젠가 걸어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 시간에 잠들어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손끝이 유리창에 닿은 채 조금 머물렀다. 불빛은 번지고 도시는 여전히 낯설다. 돌아갈 시간이 오기 전까지, 이 창밖 풍경은 조금씩 익숙해질 것 같다.

아직 정하지 못한 시간

조용히 깼다. 창밖은 아직 회색이었고, 낯선 거리의 소리가 아스라이 섞여 들렸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이불 밖은 서늘했고, 배개에는 어젯밤의 비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몇 시인지 모르는 채, 복도로 커피 향이 스며들었다. 무언가 시작되는 듯한, 그러나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간. 창턱에 놓인 유리컵 위로 햇살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유리컵 가장자리에 손을 얹으면, 차가운 온기가 느껴질 것 같았다. 밖에서는 누군가 재떨이를 터는 소리, 먼 빵집 냄새 같은 것이 바람에 실려 왔다. 벽지에는 오래된 물결 무늬가 있었고, 창틀의 먼지는 어젯밤의 사람이 흘리고 간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괜찮다고 느꼈다. 그녀는 일어나 창문을 열까, 이불을 끌어올려 눈을 감을까, 아직 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