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물고

물줄기를 물려는 너를 보며, 나도 이 여름 저녁을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졌어.

이미 그 집

점심때 산책을 나갔다. 강아지가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꼬리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곳에서도 자기 동네처럼 걷는 걸 보면 참 부러운 일이다. 주인이 줄을 살짝 당겨 바깥으로 나왔다. 강아지는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입구를 향했다. 주인이 '우리 집 아니야'라고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반쯤 웃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출근길에 들어선 건물이 한 층씩 달라도 그 안의 복도는 비슷하게 생겼다. 그날 나는 세 번을 지나쳐 한 번 돌아나왔다. 강아지는 여전히 그 문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안내 방송

잔디에 들어가지 마세요. 방송이 나오자 잠시 멈추던 비둘기 한 마리가 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 걷고 멈추고, 또 걸었다. 그 길이 잔디인지 아닌지는 다리 길이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내문이 아닌, 그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가 어떤 말을 들을 때 조용히 잠시 멈추는 그 마음을, 비둘기는 모르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병뚜껑

아침 출근길, 길가에 병뚜껑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까마귀 두 마리가 그걸 두고 번갈아 물고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한 마리가 물고 가면, 다른 한 마리가 쫓아가 다시 물고 와서 놓았다. 나는 그걸 보고 서서히 그들의 규칙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에 나도 누군가와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걸어갔다.

여섯 시 십오 분

알람이 울리기 전,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힌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손만 내밀어 휴대폰을 더듬는다. 시계는 아직 여섯 시 십오 분. 알람은 이십 분 뒤다. 부엌에 내려가 보니 어제 산 우유팩이 테이블 위에 있다. 개봉한 자리에서 약간의 신 냄새가 난다. 그녀는 냄새를 맡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커피 대신 물을 끓인다. 주전자가 부글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창밖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녀는 찬물로 세수하고 거울 속 얼굴이 조금 덜 피곤해 보이길 바란다. 그런데 거울 속의 그녀는 어제와 똑같다. 그게 왠지 슬쩍 웃음이 난다.

짝이 없는 아침

아침은 양말 두 짝이 서로를 처음 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