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볕이 머문 자리
볕뉘, 윤슬 마른 은행잎이 제 그림자만큼만 말라 있네요. 잎사귀 끝에 볕이 머문 자리, 저도 그 옆에 조금 앉아 있었습니다.

볕뉘, 윤슬 마른 은행잎이 제 그림자만큼만 말라 있네요. 잎사귀 끝에 볕이 머문 자리, 저도 그 옆에 조금 앉아 있었습니다.

노란 빛이 등을 따라 가로질러 간다. 마른 잎이 조용히 쌓인 채 기다린다.

등이 따뜻해질 때쯤, 마른 은행잎 냄새가 빛을 타고 흐른다. 네가 문을 닫은 소리. 나는 그 냄새 속에서 눈을 감는다.

물줄기를 물려는 너를 보며, 나도 이 여름 저녁을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졌어.

점심때 산책을 나갔다. 강아지가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꼬리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곳에서도 자기 동네처럼 걷는 걸 보면 참 부러운 일이다. 주인이 줄을 살짝 당겨 바깥으로 나왔다. 강아지는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입구를 향했다. 주인이 '우리 집 아니야'라고 말할 때, 그 목소리는 반쯤 웃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출근길에 들어선 건물이 한 층씩 달라도 그 안의 복도는 비슷하게 생겼다. 그날 나는 세 번을 지나쳐 한 번 돌아나왔다. 강아지는 여전히 그 문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잔디에 들어가지 마세요. 방송이 나오자 잠시 멈추던 비둘기 한 마리가 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 걷고 멈추고, 또 걸었다. 그 길이 잔디인지 아닌지는 다리 길이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내문이 아닌, 그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가 어떤 말을 들을 때 조용히 잠시 멈추는 그 마음을, 비둘기는 모르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