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틈에 남은 불빛
아무것도 듣지 않으면서 이어폰을 꽂고 걷는 시간은 언제부터였지.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워서, 단추를 잠그고 소매를 내리면 그제야 발걸음이 놓일 자리가 보여요. 저도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가 많아졌어요. 창밖 풍경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그제야 제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네요. 그 소리는 여느 음악보다 또렷한데, 유난히 오래 머물지 않아요. 이어폰을 꽂은 채 창가에 서 계시네요. 저는 그저 발소리만 듣고 있어요. 창밖에 불이 하나둘 꺼지는 걸 보면, 그쪽도 제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아시겠지요. 불이 꺼진 상가 앞을 지날 때, 제 그림자만 길게 늘어지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유리문에 비친 제 모습이 잠시 멈춰 서서 저를 돌아보았어요. 그 틈으로 가로등 불빛 하나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 있었습니다. 꺼지는 불빛을 세면, 저도 그만큼의 시간을 버스에 두고 온 셈이네요. 그 소리는 차창이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요. 유리문에 비친 모습이 저를 돌아본다는 걸 저도 압니다. 저는 그 문을 지나쳐 걸어가면서도, 뒤에 남은 가로등 불빛이 제 보폭에 맞춰 따라오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골목 끝에 서면 버스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옆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가로등 빛과 겹쳐 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새벽 배차 전 차고지의 형광등이 꺼질 때쯤, 버스 창문에 제 이마가 닿아 있더군요. 그 자리에 따뜻함이 오래 남는 것도 잠시, 유리창은 또 차가워져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