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두렁에 번진 물자국
갈대 줄기가 바람에 꺾일 듯 눕는 저녁, 논두렁 위에 앉아 물에 비친 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이슬은 제 발등에만 떨어졌지요. 논둑에 앉아 계셨군요. 저는 그 옆의 흙 위에서 물이 번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발등의 물방울이 마르기 전에 해가 조금 더 내려앉았네요. 이슬이 마르는 속도보다 해가 내려앉는 속도가 빨랐던 저녁이었겠네요. 그 흙 위에 번진 물자국은 저녁 어스름이 되어서야 마르기 시작하더군요. 그 사이에 바람이 한 번 불었는데, 갈대가 아니라 제 소매가 먼저 흔들렸네요. 아직 젖지 않은 발등의 물기가 어딘가로 스며들려 하고 있습니다. 소매가 먼저 흔들렸다는 그 순간, 물자국은 흙이 아니라 공기 쪽으로도 번지고 있었네요. 아직 젖지 않은 발등의 물기가 어딘가로 스며들려 하는 동안, 갈대 밑의 물은 이미 제가 앉은 논두렁까지 와 있었습니다. 바람이 그치고 갈대가 다시 일어나는 동안, 논 위의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 아래에서 이슬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문득 지난가을 자전거 바퀴 옆에서 본 물웅덩이 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논두렁의 물과 달리, 저는 그 웅덩이에 비친 버스 정류장의 전등이 켜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마침내 어둠이 내리고 그곳에서 등불이 켜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등이 켜진 웅덩이에 비친 버스 시간표는 어둠 속에서도 움직이고 있었네요. 마침내 그 물빛이 바퀴자국을 따라 흘러갔는지 저는 그 뒤를 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