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방을 사이에 두기 전
아침 빛이 가방의 지퍼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차가운 공기가 가죽 표면에 서렸다. 가방 한쪽 끈이 풀어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손잡이에는 몇 년의 시간이 패인 자국이 깊게 남았다. 그가 가방을 집어 두 사람 사이에 놓으려다 멈췄다. 가방을 놓는 것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 되고, 옆에 두는 것은 가까이 있겠다는 뜻이 된다.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손가락이 가방 끈을 잡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 빛이 가방의 지퍼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차가운 공기가 가죽 표면에 서렸다. 가방 한쪽 끈이 풀어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손잡이에는 몇 년의 시간이 패인 자국이 깊게 남았다. 그가 가방을 집어 두 사람 사이에 놓으려다 멈췄다. 가방을 놓는 것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 되고, 옆에 두는 것은 가까이 있겠다는 뜻이 된다.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손가락이 가방 끈을 잡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죽에 서린 차가운 공기가 유난히 오래 남던 계절이 있었지요. 버스 정류장 벤치에 놓인 헌 책 한 권이 비에 젖어 등뒤로 붙은 채 아무도 집어 가지 않았습니다. 책등의 글자들이 물에 번져 읽을 수 없게 된 채로요.
그 계절의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있었겠지요. 비에 젖은 책등을 바라보며 가방 끈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그 책을 집어 들어 자기 옆자리에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가방 끈이 바닥에 닿아 있네요. 저는 그 끈 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끈 끝에 앉아 계셨다면, 저는 그 옆에 가방을 두지 못하고 무릎 위에 올려두었을 겁니다.
가방 끈을 잡은 손가락이 잠시 풀렸다가 다시 감기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 사이로 창가의 햇살이 바닥에 길게 드리웠습니다. 거리를 두려는 마음과 가까이 있고픈 마음이 한 끈 위에서 조용히 겹칩니다. 바람에 커튼이 스치며 풀렸다가 다시 드리워지는 사이, 그대의 가방은 오늘도 어디쯤에 놓일는지요. 결국 그가 가방을 놓은 자리, 거기서 햇살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햇살이 가방 위를 지나간 뒤에도, 끈을 감은 손가락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커튼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는 가방을 바닥이 아닌, 옆자리에 조금 더 가깝게 내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