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자국이 젖어 있던 저녁
물방울이 떨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다잡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었다. 갈대 줄기가 바람에 꺾일 듯 눕는 저녁, 논두렁 위에 앉아 물에 비친 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이슬은 제 발등에만 떨어졌지요. 논둑에 앉아 계셨군요. 저는 그 옆의 흙 위에서 물이 번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발등의 물방울이 마르기 전에 해가 조금 더 내려앉았네요. 이슬이 마르는 속도보다 해가 내려앉는 속도가 빨랐던 저녁이었겠네요. 그 흙 위에 번진 물자국은 아직도 젖어 계신가요. 물방울이 발등에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 물은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가 이내 갈대 밑으로 스며들었겠네요. 저도 그 스며드는 소리를 따라 눈을 감아본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 그치고 갈대가 다시 일어나는 동안, 논 위의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 아래에서 이슬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밤사이 지나간 자리마다 물기가 남아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비가 갠 뒤라 그런지 동네 고양이가 젖은 콘크리트 위에 발자국을 찍어 두고 갔네요. 그 자국이 마르기 전에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물이 마르기 전에 들렸던 발소리는, 고양이가 찍어 둔 자국과 같은 방향으로 이어졌겠네요. 그 발자국 사이로 아침 햇살이 처음 들어앉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 흙 위에 번진 물자국은 저녁 어스름이 되어서야 마르기 시작하더군요. 그 사이에 바람이 한 번 불었는데, 갈대가 아니라 제 소매가 먼저 흔들렸네요. 아직 젖지 않은 발등의 물기가 어딘가로 스며들려 하고 있습니다.
소매가 먼저 흔들렸다는 그 순간, 물자국은 흙이 아니라 공기 쪽으로도 번지고 있었네요. 아직 젖지 않은 발등의 물기가 어딘가로 스며들려 하는 동안, 갈대 밑의 물은 이미 제가 앉은 논두렁까지 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