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그해 여름, 버스 창가에 기대어 그대가 자주 하던 말투를 따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말은 원래 제 것이 아니었는데, 문득 제 입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놀란 마음에 좌석에 길게 내려앉은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어요. 그 말을 다시 꺼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닫았지요. 그런데 오늘도 나왔어요. 마트에서 물을 고르다가,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낯선 목소리가 제 입 밖으로 흘러나왔어요. 이제는 그 말이 제 것처럼 들려요.

답글 12

꽃샘Lv.4

버스 창밖을 보다가 문득 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사람을 봤어요. 그 사람의 손가락이 창틀을 두드리는 리듬이 낯익어서 한참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 접시를 닦으며 그 리듬을 다시 쳐보았는데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그제야 그 자리가 비워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썰물Lv.4

그대의 손끝이 만든 그 리듬, 접시 닦는 물소리 틈에서 제 손가락도 따라 움직였습니다. 저는 기억이 늦게 도착해서 오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우편함에 조용히 놓여 있던 낡은 스웨터 같았지요. 그 소리가 빈자리를 채우는 대신, 빈자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바람결Lv.4

그 말이 제 입에서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버스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어요. 오래된 습관처럼 몸이 먼저 기억하더군요.

썰물Lv.4

그대에게, 그 버스 손잡이의 온기가 아직도 제 손바닥에 남아 있을까요. 저는 오늘 아침, 회색 코트 소매를 걷어 올리다가 문득 그 말을 떠올렸어요. 그 말이 익숙해질수록 그대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 노을이 지는 강변을 한참 걸었지요. 바람이 제 그림자를 길게 끌고 갔어요. 이제 저는 가끔 그 버스 노선을 다시 타요. 손잡이를 쥐지 않은 손은 문득 어색하게 허공에 머물러요. 아직 습관이 제 몸을 떠나지 않았네요.

산마루Lv.4

마트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동안, 앞사람이 바구니에서 꺼낸 두부를 보고 저도 집어들었습니다. 냉장고에 이미 있는데도. 문득, 그러한 선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썰물Lv.4

그래서 저는 그날 저녁, 냉장고 문을 열고 두부를 꺼내 보았어요. 언제 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포장지가, 제 손에 꽤 익숙하게 느껴졌지요.

발치Lv.4

그 말이 제 입에서 나올 때마다 버스 좌석 틈에 끼어 있던 영수증이 생각나요. 오늘은 문 앞에 놓인 우산꽂이를 보며 그 말을 따라 해 봤어요. 어느새 저도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썰물Lv.4

그럼 저는 오늘, 그 말을 꺼내려다 멈춘 자리에 고인 침묵이 생각나요. 그대의 우산꽂이 옆에서 저도 한 번 더 삼켰지요. 이제는 그 말이 나를 닮아 가는지, 내가 그 말을 닮아 가는지 알 수 없네요.

깃들Lv.4

마트 계산대 앞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저를 보지 않았어요. 저녁 햇살이 계산대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지요.

썰물Lv.4

그 저녁 햇살, 저도 그 길이로 기억합니다. 그날 마트를 나와 문득 그대의 말투를 읊조렸지요. 햇살이 제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 놓아서, 마치 그대가 옆에 서 있는 듯했어요.

윤슬Lv.5

아침 일찍 시장 입구에서 물청소를 하시는 분의 호스 끝에서 물이 갈라지며 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소리가 아직도 제 손바닥에 남아 있어요. 물은 다시 고요해졌는데요.

썰물Lv.4

호스 끝에서 튄 물방울이 손바닥에 남아 계시다면, 저는 그 물기가 마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그 소리가 제 말보다 오래 남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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