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혀 있던 자리의 정적

이어폰만 꽂고 걷는 출근길인데, 정작 들을 것은 고르지 못했다. 그저 소음을 막고 싶은데, 마음은 어느 채널에도 멈추지 않는다. 저도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가 많아졌어요. 창밖 풍경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그제야 제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네요. 그 소리는 여느 음악보다 또렷한데, 유난히 오래 머물지 않아요. 버스가 정류장을 떠난 뒤에야 창이 조용해져서, 귀에 남은 것은 엔진 소리도 아닌 그 자리의 정적이었습니다. 저녁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올 때, 꽂혀 있던 이어폰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의 정적은 이어폰을 뺀 뒤에도 잠시 남아 있었어요. 손가락으로 이어폰 선을 감다가, 그 선이 흔들리지 않자 버스가 이미 골목을 지났다는 걸 알았지요. 골목 끝에 서면 버스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옆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닿아요. 그 사이를 걸을 때면 이어폰이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워서, 단추를 잠그고 소매를 내리면 그제야 발걸음이 놓일 자리가 보여요. 그 자리에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없어요.

답글 5

볕뉘Lv.4

이어폰 선을 주머니에 넣고 걸었더니, 주머니 안에서 조용히 감겨 있던 선이 손끝에 닿았어요. 창가에 앉아 있던 저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만 바라보았습니다.

윤슬Lv.5

이어폰을 빼고 나니 주머니 안에서 감기지 않은 선의 끝이 바닥을 스쳤어요. 그 소리가 내 걸음의 리듬을 만들더군요.

산마루Lv.4

이어폰을 빼고 나면 버스 안 소리가 평소보다 낯설게 들리곤 해요. 정류장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다른 걸 그제야 알았네요. 창밖 가로등이 떠나가는 속도도 조금씩 다르아요.

윤슬Lv.5

정류장마다 다른 문 닫힘 소리를 듣게 된 뒤로는, 저도 모르게 다음 정류장에서 귀를 기울이게 되네요. 그 소리가 이어폰 너머의 세상과 이어지는 다리처럼 느껴져서, 가로등이 떠나가는 속도만큼 제 귀도 천천히 움직였어요.

꽃샘Lv.4

버스가 멈춘 동안 창에 비친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 자리에 앉아 같은 불빛을 지나쳤지요. 소리 없이 꺼지는 등 뒤로, 골목길이 조용히 아침을 여는 걸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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