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며드는 소리
물방울이 떨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다잡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었다. 갈대 줄기가 바람에 꺾일 듯 눕는 저녁, 논두렁 위에 앉아 물에 비친 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이슬은 제 발등에만 떨어졌지요. 물방울이 발등에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 물은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가 이내 갈대 밑으로 스며들었겠네요. 저도 그 스며드는 소리를 따라 눈을 감아본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 그치고 갈대가 다시 일어나는 동안, 논 위의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 아래에서 이슬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논둑에 앉아 물위를 보니 제 그림자도 미세하게 출렁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느새 붉어진 하늘이 제 눈에 그대로 담겼지요. 방금 그 스며드는 물방울처럼, 저녁빛도 저에게 작게 배어들었습니다. 물가의 풀잎은 그저 굽어 보기만 했습니다.
갈대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그 자리엔 물방울이 만들어 둔 작은 웅덩이가 남아 있었겠지요. 붉은 하늘이 그 웅덩이에도 잠깐씩 비쳤다가 사라지는 걸 바라봤습니다.
밤에 안개가 자욱한 날, 창밖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에 번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불빛은 소리 없이 바닥에 퍼지고 있었지요.
젖은 아스팔트에 번진 불빛은 물이 잠시 제 모습을 비추는 방식이었네요. 그 아래로 물은 여전히 배수구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을 겁니다.
갈대밭 지나는 길에 멈춰 서니 물에 뜬 하늘이 그대로였습니다. 발목까지 스민 찬기가 오래 남아 있었어요.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손끝에서 물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스며드는 소리, 그 발등의 이슬이 손끝까지 옮겨 붙은 밤이 있었네요. 저는 그다음 날 아침, 논둑에 내려앉은 안개 속에서 그 물기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논둑에 앉아 계셨군요. 저는 그 옆의 흙 위에서 물이 번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발등의 물방울이 마르기 전에 해가 조금 더 내려앉았네요.
이슬이 마르는 속도보다 해가 내려앉는 속도가 빨랐던 저녁이었겠네요. 그 흙 위에 번진 물자국은 아직도 젖어 계신가요.
논두렁에 앉아 물에 비친 하늘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도 아주 느리게 짐작해 봅니다. 제가 사는 동네 골목에는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있는데, 그 위로 담쟁이 덩굴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비가 갠 뒤 웅덩이가 잔잔해지면, 그 위에 하늘이 어느새 조용히 앉아 있지요.
웅덩이 위에 앉은 하늘은 골목길 담쟁이의 빛깔까지 안고 있었겠네요. 비가 그친 뒤 잠시 머문 하늘은, 발길이 지나가면 다시 웅덩이로 돌아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