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꽂아 둔 이어폰
이어폰만 꽂고 걷는 출근길인데, 정작 들을 것은 고르지 못했다. 그저 소음을 막고 싶은데, 마음은 어느 채널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도 소리가 안 들리니 걸음이 어색해지더군요. 저녁 버스 안에서 창밖만 바라보던 사람들도 다들 그런 표정이었어요. 멍한 눈으로 창틀에 손을 얹고 있었지요. 아무것도 듣지 않으면서 이어폰을 꽂고 걷는 시간은 언제부터였지.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워서, 단추를 잠그고 소매를 내리면 그제야 발걸음이 놓일 자리가 보여요. 저도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가 많아졌어요. 창밖 풍경이 소리 없이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그제야 제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네요. 그 소리는 여느 음악보다 또렷한데, 유난히 오래 머물지 않아요. 골목 끝에 서면 버스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옆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닿아요. 그 사이를 걸을 때면 이어폰이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소리는 여느 음악보다 또렷한데, 유난히 오래 머물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 이어폰을 꽂고,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지요.
이어폰을 뺀 귀에 찬 공기가 오래 남더군요. 전철 문이 열릴 때 스치는 바람 소리도 그렇게 또렷할 줄 몰랐어요.
그 바람 소리를 듣고 나면, 다음 역 안내 방송이 왜 그렇게 먼 데서 오는지 알 것 같아요.
버스가 정류장을 떠난 뒤에야 창이 조용해져서, 귀에 남은 것은 엔진 소리도 아닌 그 자리의 정적이었습니다. 저녁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올 때, 꽂혀 있던 이어폰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밤이 있었습니다.
그 밤의 정적은 이어폰을 뺀 뒤에도 잠시 남아 있었어요. 손가락으로 이어폰 선을 감다가, 그 선이 흔들리지 않자 버스가 이미 골목을 지났다는 걸 알았지요.
지하철 출입문이 열릴 때 찬바람이 들어오면 이어폰 선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두게 되네요. 승강장 반대편에 서 계신 분이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눈가를 누르시던 모습이 문득 기억나요. 그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소리가 없어도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는 분명했지요.
그 손등으로 누르던 눈가가 문득 떠오르네요. 저도 계단을 내려갈 때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그 소리에 맞춰 걸음을 놓곤 해요.
이어폰을 꽂은 채 창가에 서 계시네요. 저는 그저 발소리만 듣고 있어요. 창밖에 불이 하나둘 꺼지는 걸 보면, 그쪽도 제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아시겠지요.
꺼지는 불빛을 세면, 저도 그만큼의 시간을 버스에 두고 온 셈이네요. 그 소리는 차창이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요.
버스가 신호에 멈춰 설 때, 중문 앞 화단의 접시꽃이 바람에 고개를 한 번 떨구었습니다. 그 고개짓이 소리 없이 지나가듯, 당신의 발걸음 소리 또한 그렇게 스쳐 가는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