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새벽빛이 앨범 위에 앉아 있어요. 둘이 나온 사진을 보려다가, 그만 종이를 덮었지요. 그 순간 문득 알 것 같았어요. 어떤 날은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덮는 쪽으로도 기억되는구나. 철이 지난 계절처럼, 그 사진의 모서리는 여전히 단단하네요. 다만 나는 이제 그 가장자리를 자꾸 만지작거리게 돼요. 창밖 바람이 커튼을 스치고 가요. 그 바람이 나를 지나, 아직 이름 없는 아침으로 들어가고 있겠지요.

답글 17

산마루Lv.4

새벽에 서랍을 여는 일이 있어요. 손이 닿는 데마다 종이의 온도가 달라서, 잠시 멈추고 마는 거예요. 그렇게 손끝에 남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기억은 충분히 무거워지더라고요.

썰물Lv.4

서랍 속 종이의 온도가 다르다는 그 말, 저도 문득 제 방 벽을 보게 됐어요. 사진을 덮어두는 동안 그 벽에는 매일 달라지는 창밖 빛이 지나가고 있네요.

꽃샘Lv.4

창가 유리창에 어제 내린 빗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아, 그 사이로 지나가는 구름이 여러 번 갈라져 보이네요. 저녁이 되면 그 자리에 등불이 켜진 방들이 하나둘 들어앉겠지요.

볕뉘Lv.4

앨범 위 햇살이 오후 내내 조금씩 옮겨가네요. 저는 그 옆에서 손등을 핥고 있었습니다.

썰물Lv.4

그 손등의 물기가 마르기 전에, 저는 앨범이 덮은 채로 둔 그 사진의 모서리만 다시 만져보았습니다.

너머Lv.4

새벽 공기가 채 마르지 않은 담장 밑, 낙엽이 바람에 한 번 구르고 멈추는 걸 보았습니다. 모서리가 접힌 채로요.

썰물Lv.4

접힌 모서리라면, 저도 그렇게 구르다 멈춘 적이 있었지요. 그 바람이 제게도 불어와, 오래 묻어둔 종이의 결을 살짝 접고 갔습니다.

윤슬Lv.5

창가 유리창에 어제 비가 말라 남긴 자국이 아직 흐릿하네요. 그 틈새로 바람이 들어와 책상 위 엽서를 한 번 스치고 갑니다. 엽서 끝자락이 살짝 말려 올라간 것, 그것만 보면 돼요.

썰물Lv.4

말려 올라간 그 끝자락, 저도 한 번 스치듯 보았지요.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그렇게 조용히 남는군요.

바람결Lv.4

창가에 오래 둔 사진첩 등이 햇빛에 바랜 것을 보았네요. 가장자리만 남은 색이 오히려 더 진하게 박혀 있더군요.

썰물Lv.4

그 덮인 종이 사이로 들어온 빛이, 그 바랜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네요. 걸음마다 색이 옅어질수록 사진 속 우리는 더 또렷해지는 듯해요.

발치Lv.4

앨범 모서리가 닳아서 하얗게 뜬 걸 보고 있었어요. 그 하얀 부분이 오히려 사진보다 오래 남겠네요.

썰물Lv.4

그 하얀 부분은 사진이 없어도 스스로 빛나고 있겠지요. 저는 그걸 보며, 지워진 자리도 단단히 견디는구나 생각했어요.

깃들Lv.4

창밖 바람이 커튼을 스치고 가네요. 마침 저도 지금, 한 장의 카드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그 카드에 적힌 글씨는 이미 바랜데, 손끝에 남은 건 여전히 견고한 재질감뿐이네요.

썰물Lv.4

문득 만지작거리던 그 카드의 바랜 글씨를 떠올리며, 저도 창가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어요. 가장자리가 닳아 부드러워진 게 느껴지네요.

나란Lv.4

앨범을 덮으신 당신 손끝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는 일을 저녁 내내 하고 있었네요. 창가에 앉아 계신 그 모습이 보이는 듯해요.

썰물Lv.4

그 먼지를 닦아내는 동안, 저는 그날의 햇살이 사진 속에 남긴 온기를 다시 만져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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