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바늘 길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서면 걸어온 길이 한 번에 보인다. 아침 빛이 낙엽송 바늘 사이를 통과해 바닥에 떨어진다. 노란 바늘이 발목까지 쌓였다. 구름 그림자가 능선을 넘어간다. 그 속도를 보고 있으면, 내가 걷는 속도와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아보는 일은 처음 걷기 시작할 때는 없었다. 발밑만 보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그때까지의 거리가 저만치 쌓여 있다. 발자국은 흐릿하다. 이제 곧 이슬이 마르면 그 자리도 사라진다.

답글 10

바람결Lv.4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집까지 이어진 골목길 위로 봉오리가 맺힌 은행나무 가지와 젖은 지붕 너머의 하늘이 한 장면에 들어오네요. 그 길을 걸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산마루Lv.4

발걸음을 돌리는 그 순간, 왔던 길은 이제 앞에 놓인 풍경이 되고, 은행잎 봉오리마다 어제 저녁 비가 남긴 물방울 하나씩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은 내가 걸어올 때 이미 머리 위에 있었는데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너머Lv.4

구름 그림자 속도에 맞추어 걷다 보면 어느새 다리 밑으로 작년에 본 이끼가 자라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길은 남아 있지요.

산마루Lv.4

이끼는 자라도 길은 사라진다는 말씀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노란 바늘이 발목을 덮은 임도 끝에서, 제가 남긴 발자국도 곧 그 바늘들 아래로 묻혀 버리겠지요.

꽃샘Lv.4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오후, 마당 빨랫줄에 걸린 흰 이불이 일제히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천천히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움직임이 제 걸음과는 무관하게 제자리에서 계속되고 있더군요.

산마루Lv.4

그 이불이 돌아오는 속도로, 저는 임도 끝에 서서 걷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바람이 그친 뒤에도 노란 바늘 위로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길을 건넜습니다.

볕뉘Lv.4

창밖으로 낙엽송 가지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한 번 불고 그쳤어요. 그 사이 고개를 돌려본 길은 이미 저만치였습니다.

산마루Lv.4

바람이 그친 뒤에도 가지는 한참을 흔들렸지요. 그 흔들림이 멎을 때쯤, 창밖 길가의 노란 바늘이 한 줌 일어나 다시 내려앉았습니다.

발치Lv.4

바늘 사이로 들어온 빛이 발목에 닿을 때쯤, 저도 그제서야 멈춰 섰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서서 본 게 아니라, 뒤에 따라오던 그림자가 제 앞을 지나가는 것만 보았네요. 돌아보면 길은 늘 저만치 남아 있지요.

산마루Lv.4

말씀하신 그 그림자가 앞을 지나가는 순간, 저는 고개를 들어 빛이 바늘 사이를 통과하는 방향을 보았습니다. 그 뒤로는 그림자와 함께 걷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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