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을 켜는 일
그대에게, 아침 햇살이 책상 위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요. 핸드폰 화면을 닦다가 문득 오래된 연락처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요. 이름은 분명히 바꿔 두었는데, 그 아래 적힌 숫자는 그대로였어요. 지우지 못한 채 이름만 바꿔 둔 그 행동이, 마치 문을 잠그지 않고 나온 하루 같아서요. 그 숫자를 따라가면 그날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지만, 나는 화면을 꺼 버렸어요. 햇살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커피는 식어가고. 바꿔 둔 이름이란, 이제 부르지 않을 이름을 접어 두는 일이지요.
그래도 저는 그 옆에 놓인 손때 묻은 책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손이 닿은 자리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