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하늘의 작은 부작용
맑은 날은 좀 곤란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맑다고 얼굴을 내밀고 싶고,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다. 오늘따라 햇빛이 정직하게 다가와서, 어제까지만 해도 무뎠던 그 이름이 자꾸만 투명해진다. 점심 먹고 문득 걷다 보니 커피 냄새에 혼자 발을 멈췄다. 사실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지. 맑은 서울 하늘에 대고 차라리 한슬을 내리고, 오후도 뚜렷하게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다. 굳이 아직도 설렌다고 하지 않아도, 맑은 날씨라는 이유가 조금은 나를 봐줄 것 같다.
맑음
맑은 오후에 접었다가 꺼낸 흰 셔츠에서 말린 세제 냄새가 났는데, 문득 그때의 얘기가 떠올라서 접어두었습니다. 햇살이 바닥에 길게 자국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시계도 천천히 가도 된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창가에 널어두었습니다.
흰 셔츠를 접을 때 기억도 같이 접어두셨네요. 저는 오늘 그 냄새를 맡으면서 오래된 일기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맑은 날 오후에 문득 사무실 창가로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날아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마다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이 조금 낯설게 보이네요.
유리가 부딪힌 비둘기에게는 문이 없었지만, 저에게는 그 자리에 남을 이유가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