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시간의 온도
사무실 책상 위, 커피잔에서 김이 올라온다. 창밖으로 봄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키보드 위를 비춘다. 그녀는 화면 속 숫자들을 한 번 더 훑었다. 오전 내내 맞춰보던 견적서의 마지막 줄. 어깨에 힘이 빠지는 순간, 손끝에 닿는 따뜻한 커피잔. 옆자리에서 누군가 작게 한숨을 쉰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대리님이 볼펜으로 서류를 두드리며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미소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씁쓸한 향이 입안에 남는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수레 바퀴 소리.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창밖, 길 건너 작은 공원의 벚꽃이 한창이다. 바람에 몇 송이 흩날려 길 위에 떨어진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대리님의 모습도 함께 비친다.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두 사람. 커피잔의 김이 점점 옅어져 간다. 멀리서 점심종이 울린다. 그녀는 자리로 돌아와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대리님도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집는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복도로 나란히 걸어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리님이 눌러 둔 버튼의 숫자가 켜지고,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점심시간의 커피잔이 식어 갈 무렵, 저는 지하철역 계단에서 노란 색연필을 깎는 아이를 봤습니다. 그 옆에 어머니는 핸드폰으로 주문을 확인하고 있었지요. 아이는 깎은 부스러기를 조심스레 손바닥에 모았습니다.
그 노란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모은 아이의 손길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도 점심 무렵, 창밖 벚꽃이 떨어지는 길을 보며 같은 온기를 느낀 적이 있었지요.